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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태백산맥의 벌교를 갔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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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부지기
댓글 0건 조회 64회 작성일 21-02-25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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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교를 갔다 왔다.


책장에 꽂아 놓고 제목만을 일별하다가 지난달부터 “태백산맥”을 다시 읽고 있다.

너무나 혼란스러운 왜곡과 상실의 이 시기를 어떻게 해석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 가를 살펴보고 마음을 가다듬는데 “태백산맥”처럼 좋은 것이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태백산맥”,  그 이야기의 시간지남이 오래지 않으며, 그 흔적이 아직도 우리의 생활 곳곳에 스며있고 우리가 나고 자란 모두의 정겨운 고향의 이야기이자

 질곡속에 살아남은 자들의 질기고도 모진 생명력을 묘사하기에, 그리고 그 이야기가 아직도 현재화하고 있기에 역사소설이라고 하기에는 왠지 적절치 않은

 그야말로 우리 현대사의 “태백산맥”같은 이야기다.


태백산맥을 두고 몰역사적인 이들은 자학사관의 전형적인 소설이라고 폄하하고 왜곡하지만 아픔과 좌절, 분노와 회한으로 얼룩진 일제하와 해방이후의 우리

현대사를 뺏기고 희생하며 고통받은자의 시각에서 나약하나 끝끝내 살아남은 민초들의 삶과 뺏고 짓누르며 권력과 부를 유지해 온 기득권자들의 모습을 분명

하고 정확하게 그리고 있으며, 그래서 그 역사가 오늘날의 우리사회를 어떻게 결과하도록 했는지를 일 깨워 주는 참으로 소중하고도 소중한 작품이다.


이번이 3번째 읽기지만 읽다 보면 솟아나는 분노와 연민, 아쉬움과 열정, 저자에 대한 존경과 경이 그리고 동조와 공유를 어쩔수 없다.

아직도 내 마음에 그 같은 감정이 남아있음에  애써 스스로를 대견해 하는 것도....


벌교(筏橋)! 한자를 풀면 “뗏목다리”란 뜻이다. 보통명사가 고유명사가 된 유일한 곳이란다.

흔한말로 순천가서 인물자랑말고 여수가서 돈자랑말고 벌교가서 주먹자랑하지말라고 한다.

그래서 벌교하면 주먹패 왈짜가 많은 곳, 매우 드세고 텃세가 심한 동네로 여겨졌다.


하지만 “태백산맥 ”을 통해서 벌교는 이미 나에게 정감있고 친숙한 고향같은 고장으로 다가와 있다. 그래서 가보고 싶었다. 아마 “태백산맥”을 읽은 이들이라면

누구나 나같이 그렇게 벌교가 상상해 질 것이다.


사실 지난 봄 벌교 꼬막을 맛보기 위해 그저 스치듯 벌교를 잠깐 들르기는 했었지만 그 때문에 마음 한켠 내내 무언가 죄지은 듯 하기도 했었다.


벌교는 행정적으로는 보성군에 속해 있지만 위치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순천에 더 가깝다. 이곳 여수에서 벌교까지는 약40키로, 순천에서는 10킬로에 불과하다.

그러기에 소설에서도 순천이 자주 거론되고 여순사건의 영향도 가장 심하게 받은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어떻게 하면 태백산맥의 벌교를 제대로 느낄수 있을까 궁리하면서 벌교로 향한다.

가는 도중 순천 팔마체육관 근처에 이르면서 순천만으로 가는 차들로 인해 도로가 꽉 막히고 만다. 주차장이 따로 없다. 하지만 순천만의 아름다운 일몰을

보려면 저 정도의 불편은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나는 순천만이 아닌 벌교를 가지만 말이다.

얼마전만 해도 버림받은 듯한 갯벌이 이제는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오는 명소이자 고장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진정 아끼고 보존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환경이 왜 소중한지를 실례로 보여주고 있는 사례다. 하지만 이렇게 사람이 많이 찾으면 또 훼손 될 텐데, 역설적이게도 그동안 사람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어

그나마 보존이 되던 것이 이제 이렇게 사람이 많이 찾고 이를 관광자원화한다는 미명하에 지자체들이 개발하고 손대면 안 되는데... 하는 염려가 든다.


벌교읍사무소를 첫 번째 목적지로 정하고 가는 도중에 벌교초입에 들어서니 “태백산맥문학관”이라는 팻말이 눈에 들어온다. 그곳으로 갔다.

문학관은 아직 개관을 하지 않았는지 아니면 부분작업을 하는지 벽면공사중이다. 벽면에 벽화를 그린다고 한다. 공사중이라 안으로는 들어 갈수가 없다.

아쉽다. 대신 문학관 앞에서 소설속의 현부자집과 소화의 집을 볼 수 있었다.

소화의 집은 소설내용을 표현하고자 새로이 짓고 있었지만 현부자집은 이전부터 있던 건물이란다. 기실 박씨 문중의 집이라고 한다.

소설에서 현부자네 제각에 올라서면 벌교의 중도들판이 다 보인다고 해서 제각에 올라가보고 싶었지만 오를 수가 없었다.

그 대신 본채 마루터에서 폴짝 뛰면서 중도들판을 느껴본다. 보고만 있었어도 배가 불렀겠다.


태백산맥문학관이 완공되면 인근이 문학공원화 된다고 한다.  한 사람의 훌륭한 소설가, 한권의 소설이 한 동네를 이렇게 변화 시키는구나 라는 생각에

문학의 힘을 새삼 느낀다.


소화의 집 옆에 태백산맥에 나오는 장소들을 나타내는 커다란 안내그림이 걸려있다. 소화다리, 횡개다리, 철교, 김범우의집, 금융조합, 정사장네 술도가, 남원장,

자애병원 등등 소설속의 시설과 건물들이 현재인 양 나타나 있다. 김범우, 염상진, 하대치, 정하섭, 소화.......그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카메라가 없어 안내그림을 가지고 간 노트에 옮겨 그렸다.

벌교는 벌교포구를 사이에 두고 읍사무소등이 있는 동네중심지와 조정래의 고택, 문학관, 그리고 김범우의 집 등이 있는 주택가로 나누어 져 있다.


부용교를 지나 벌교 중심지로 들어선다.

별교읍사무소 주차장에 차를 놓고 노트를 보면서 소설속의 장소를 본격적으로 찾아 나선다.

먼저 읍사무소에서 가까운 자애병원을 찾았다. 읍사무소를 등에 지고 오른쪽의 횡개다리쪽으로 걷다보면 왼편 도로가에 벌교어린이집이 있다.

그곳이 소설속의 자애병원이다. 실제로는 후생병원이라는 이름의 양의원이 있었다고 한다. 그곳이 병원임을 나타내는 표식은 어디에도 없다.

허나 안창민이 총상을 입고 전원장의 치료를 받고 이지숙의 도움으로 염상진과 함께 산속으로 탈출하는 장면이 떠오르며 어린이집이 병원인양 변하는 것 같다.


가던 방향으로 계속가면 연이은 집들이 끝나는 어름에 홍교(횡개다리)가 나타난다. 벌교라는 이름이 유래된 다리로 홍교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라고 한다.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길이는 30여미터쯤 되고 3개의 아치모양의 다리이다.

3개의 이전다리에 최근에 지은 다리가 맞대어 있다.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 


횡개다리를 건너 집들 사이의 좁은 골목사이로 김범우의 집을 찾아 나선다. 어디에도 안내 표식이 없다. 집들 사이로 골목을 이리저리 기웃거리다 담장이 높다랗게

쳐진 기와가옥을 보고 직감적으로 이곳이라는 생각에 그곳으로 향했다. 직감이 맞다. 대문 바로 앞에 김범우의 집을 알리는 안내문이 있다. 대문앞에는 오토바이가

세워져 있고 대문안에는 자전거가 있다. 사람이 살고 있는지 어쩐지 확인이 안 된다. 안으로 들어가려다 짖어대는 개소리에 되돌아 나오고 말았다.

생각한 것처럼 그리 큰 집은 아니다. 김범우나 그 아버지 김사용도 실존인물은 아니다. 다만 작가가 이 집 아들과 어릴 때 친하게 지냈다고 하며 그 인연에 소설적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김범우의 집을 나와 횡개다리를 다시 건너 벌교포구길을 걸었다. 포구를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아스팔트 길이 나있다. 벌교포구를 지나 차가 건너다니는

다리 옆에 부용교(소화다리)가 있다. 부용교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건만 사람들은 소화다리라고 부른다고 한다.

사실 소화다리는 일왕 히로이또 재임기인 소화6년에 지어진 이후 그렇게 불리어 졌다고 한다. 하지만 소화라는 이름에서 일제의 기억이 아닌 희디 흰 하얀꽃 소화,

애잔한 여인의 지순한 사랑의 기억만이 떠 오른다. 그 애잔함속에 그 예쁜 이름을 가진 다리 위에서 사상이라는 관념에 의해 아니 정확하게는 가진자와 없는자들

간의 싸움에 의해, 아니 더 정확히는 가진자들의 폭정에 의해 수 많은 피가 뿌려지고 목숨이 죽어간 안타까움이 안내판에서 묻어난다.


읍사무소 왼쪽의 시내중심지들에 산재해 있는 소설속의 장소를 찾으러 시내로 향한다.

안내판이 없기에 노트에 그려놓은 그림만 보고 장님 문고리 찾듯 찾아 나선다.

소설속 금융조합이었던 농민상담소 건물을 찾았다. 일본식 석제건물이 아직도 남아있다. 금융조합옆에 소설속 책방건물이 있다.

책방 주인 문기수와 그의 딸 정님이 안에 있어야 하지만 지금은 비어 있다.


그림을 잘못 옮겼는지 남원장과 옛날다방, 남도여관은 찾을 수가 없다. 골목길을 몇 번이나 왕복했지만 찾지 못하고 결국은 포기하고 말았다.

아니 포기라기 보다는 다음을 위해 남겨두었다.

 

읍사무소로 돌아와 벌교속의 “태백산맥” 찾기를 끝내려니 무언가 아쉬움이 남는다. 해서 차로 시내를 천천히 돌아 보다 운좋게도 정하섭의 아버지 정사장이

운영했던 술도가를 발견했다. 지금은 국일식당이라는 이름의 꼬막정식을 주로 하는 음식점이다. 아쉬움이 채워진다.

생각같아서는 식당에 들어가 맛난 꼬막정식을 먹고 싶었지만 이 곳 식당에서는 일인분을 잘 팔지 않고 스산한 가을바람 때문인지 혼자서 먹는 것이 왠지 내키지

않아 식당을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문학관에서 국일식당까지 3시간정도가 걸렸다. 벌교에서의 태백산맥을 찾는 즐거움을 마무리하면서 문득 조금전 부용교를 지나면서 보았던 “외서댁 꼬막식당”

이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벌교꼬막의 원조임을 자랑하던......들몰댁, 죽산댁, 조성댁, 장흥댁,,, 그 많은 이름없는 여인네들중 왜 유독 외서댁일까?

왠지 서럽기도하고 무심하기도 하고 그리고 한편으로 참 벌교답다 라는 생각이 든다.


소설속의 외서댁!

빨치산 강동기의 아내!

빨갱이를 남편으로 둔 죄로 어린아이들과 살아남기 위해 감칠맛 나는 육신의 꼬막맛을 남편이 아닌 청년단장 염상구에게 보여주어야만 했던 여인!

그리고 그 죄도 아닌 죄스러움에 목숨버린 여자!

버린 목숨도 모자라 부정한 여자로 죽어서도 손가락질 받은 엄마! 

그 한 많고 애절한 삶과 고달픈 육체의 애증을 한 겨울 꼬막맛으로 읽어야 하는 서러운 우리네 현대사!

그리고 색깔의 농도는 달라도 또 다시 반복되는 지금의 이 팍팍한 세상.


벌교를 뒤로 하고 순천쪽으로 차를 몬다. 달리는 차 뒤편으로 일몰의 붉은 햇살이 비친다.

붉은 햇살 뒤로 외서댁의 벌교가 처연히 웃으며 따라온다.


(돌아오는 길에 이전부터 먹고 싶었던 순천욕보할매집에서 짱뚱어탕이 생각나 전화를 했다. 고맙게도 일인분도 판다고 한다.

 별량면사무소앞에 있다. 얼큰한 것이 무척이나 맛있어 한방울의 국물도 남김없이 깨끗이 비웠다. 옆 손님들이 먹고 있는 쭈꾸미탕과

구이도 정말 맛 있을것 같다. 다음번에는 혼자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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